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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용이 이야기(2) 그는 왜 ‘삐용’이었을까?
삐용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2022년, 주홍이 학대 사건이 발생했을 때였다. 주홍이가 한림쉼터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느 견사에 있던 아이인지 故 이묘숙 소장님(이하 묘숙 소장님)께 여쭤봤을 때 '삐용이네'라는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삐용이네가 어디인지 묻자, 출입구 맞은편에 있는 견사라고 설명해 주셨다. '삐용이네'에는 총 열 마리의 아이가 함께 살고 있었고, 그중 보리를 제외한 모든 아이가 삐용이의 자식이라고 하였다. 수년 전, 묘숙 소장님은 개를 키워 파는 사람에게서 삐용이를 데려왔다고 한다. 그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쉼터에서 새끼를 낳은 게 두 번이란다. 당시엔 중성화 수술이 안 된 경우가 종종 있어서 그때 태어난 애들이 좀 있다. 한림쉼터 아카이브라 할 수 있는 ‘밴드’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이러하다. 삐용이가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임신을 했다. 2018년 어느 날 출산을 했는데 열 마리를 낳았다. 주홍이는 그 열 마리 중 하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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