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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용이 이야기(4) 삐용이가 말기 암 환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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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분 걸림 -

CT 결과가 나왔다. 명백히 암이었다. 폐까지 전이가 되었다고 했다. 얼마나 살 수 있을까요? 평균 2달... 아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두 달이라고 했다. 그렇게 삐용이는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

때는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이었다. 암은 매우 고통스러운 병이라던데, 삐용이는 그동안 그 모든 고통을 참고 있었던 것일까? 한여름의 뜨거운 무더위 속에서 그걸 견뎌왔던 걸까?

그 고통을 알아채지 못하고,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미안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파도 누구 하나 알아봐 주지 않고, 챙겨주지 않아 원망하진 않았을지.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삐용이가 고통스러울까요?' 나의 질문에 L동물병원 원장님은 "잘 먹고, 헤헤거리는 걸 보니 아직은 괜찮은 편인 것 같아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이 암은 매우 공격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작은 암세포 하나만 발견돼도 모두 절단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어깨에서 폐까지 전이되었는데 다리를 절단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평균 두 달이라는데...우리 삐용이는 더 살 수도 있지만 다리 한쪽을 어깨부터 완전히 절단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잖는가. 회복 시간도 꽤 걸릴 것이고 고통도 심할 것이다. 어깨 쪽 암을 제거해서 살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겠지만 이미 폐로 퍼졌다. 그 암세포들은 어쩐단 말인가.

그 고통까지 더할 수는 없었다. 우리는 삐용이가 덜 고통스럽게 지낼 수 있도록 돌보며, 고통을 줄일 수 있다면 항암 치료도 진행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고통이 커지면 그때는 편안하게 보내주기로 했다. 삐용이에게 얼마나 시간이 남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삐용이의 옛 사진을 찾아보았다. 삐용이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았지만, 수년 전의 사진 속 삐용이는 더 젊고, 얼굴의 털도 까맸다. 지금은 흰 털이 자욱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새끼를 낳고, 키우고, 또 함께 살아내느라 고생이 많았던 우리 삐용이. 보잘것없는 견사에서도 자신의 집이라 여기며 그 속에서 삶을 살아낸 우리 짠한 삐용이.

젊은 시절 삐용이

소장님이 삐용이를 임시 보호하기 전, 삐용이는 쉼터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다. 병원에 가기 위해 소장님과 차를 탈 때마다 바깥 풍경에 매료된 듯 보였다. 그래서 소장님은 임시보호를 시작하며 쉼터에 올 때마다 삐용이를 데리고 다니셨다. 오가는 차 안에서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삐용이는 창밖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젠가는 이 길 위를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기를 꿈꾸지 않았을까.

삐용이의 말기 암 소식이 전해지자, 월요일 고정 봉사자 신해님은 삐용이에게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 하셨다. 그러고 보니 삐용이가 바다를 본 적이 있었을까? 바다 천지인 제주에 살면서도 쉼터 안에서만 콕 박혀 살았던 건 아닐까? 아니, 그래도 젊은 시절 탈출을 시도했을 때 바다를 둘러보고 왔을까? 삐용이가 바다를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넓고 푸르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신해님은 너무 덥지 않게 새벽같이 소장님 댁으로 찾아가 삐용이를 데리고 이호테우해변으로 가셨다. 차에서 내려놓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모래사장을 뛰어다녔단다. 사진과 영상으로 남겨진 삐용이의 모습을 보니 좋았다. 헤헤거림이 폭발하여 우헤헤헤헤~ 수준이 되어있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신해님은 이렇게 해줄 수 있는 시간이 있어 다행이라 했다. 쉼터에선 갑자기 별이 된 아이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애들에게 가기 전, 정말 한 조각의 좋은 추억이라도 만들어줄 시간이 없었던 것이 늘 안타까웠는데 삐용이에겐 그걸 해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비록 말기 암 환자지만 마지막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은 정말 다행일지도 모른다. 삐용이 본인은 모르겠지만 우리들에게만이라도 그런 시간이 주어졌다는 건 정말 소중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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