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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와

민방위와 동물병원

by 홍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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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용이 CT결과를 들으러 동물병원으로 출발했다. 주차가 걱정되어 조금 일찍 나섰는데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 주차 자리를 찾아 계속 도는대도 ㅇㅇ전용주차만 보였다. 빙빙 돌다 유료 주차장이 보이길래 냅다 들어갔다. 매우 반가웠다.

덕분에 2시가 안되어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라 대기 공간엔 아무도 없었다. 물도 한 컵 마시고 믹스커피도 한 잔 탔다. 앉아서 커피를 홀짝거리며 전자책을 읽는데 웽~ 소리가 들린다. 아 맞다. 오늘 2시에 민방위라고 했지.

창문너머 도로를 보니 한 대도 지나가지 않는다. 전쟁을 가정하여 하는 훈련이니 그래야할 것이다. 나 어릴 적엔 민방위 훈련때면 책상 밑으로 들어가 대피 연습을 했다. 친구들이랑 숨죽여 속닥이기라도하면 혼이 나곤했다. 어린 나이에 이게 과연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어쨌든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했었다.

민방위가 시작되고 잠시 후 상담이 시작되었다. 어제 찍은 CT와 엑스레이 결과물이 화면에 띄워졌고 선생님은 판독을 해주신다.

CT촬영과 조직검사를 위해 마취, 조금씩 깨어나는 삐용이

암이다. 암도 그냥 암이 아니라 말기암이다. 어깨는 물론, 폐에 결절이 많이 보인다고 했다. 어깨로부터 시작된 암세포는 폐로 전이됐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간, 신장, 소장엔 미네랄화된 결절들이 조금씩 보인단다. 그냥 결절과 미네랄화된 결절의 차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점점이 퍼져있었다.

조심스레 생존기간을 물어버니 아이에따라 다르지만 평균 2달이라고 한다.

상담을 하는 중에 경계가 해제됐다는 알람이 스마트폰으로 울린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도 된단다. 세상은 경계가 해제됐지만 나에겐 또 다른 경계경보가 울렸다. 비상이다. 다만 이것은 가상이 아니라 실제다. 민방위 훈련 후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우리나, 삐용인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삶에는 언제나 경계가 있다. 무엇을 인지하기 전과 후. 어떤 경우는 인지 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 삐용이가 언제부터 많이 아팠던걸까. 단순한 염좌인줄 알았는데 세 달만에 말기암이니… 이런 날벼락이 또 있을까? 그것도 모르고 우린 관절영양제만 두 달 내내 먹였다. 더운 여름날에도 딱히 뭘 더 해준 것도 없었다. 미안해도 너무 미안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상황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더더욱 마음이 아프다.

세상사, 어쩔 수 없는 일이 존재한다는 건 알지만… 그걸 알기에 더욱 괴롭다.

삐용이의 암 진단은 앞으로 한림쉼터의 신호탄일거다. 노견들이 많은 한림쉼터. 이제 언제나 경보 발령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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