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용이 이야기(3) 삐용이가 앞발을 들고 다녀요
어느 순간부터 삐용이가 앞발을 들고 다녔다. 발을 들고 걷는다는 건 그쪽 발이나 다리 어딘가가 아프다는 신호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상처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간혹 발 패드에 상처가 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삐용이에겐 상처가 발견되진 않았다. 그다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병원에 가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상처가 없으니 안 보이는 쪽에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엑스레이를 찍었다. 그런데 특별한 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혹시 염좌일 수도 있으니 약 먹여보고, 낫지 않으면 다른 걸 검사해 봐야 한다고 했다. 타온 약을 다 먹고, 또 한 번 약을 타 먹였으나 애는 계속 발을 들고 다녔다. 혹시나 해서 다른 병원에 가봤다.
사실 그 병원이 주로 가는 병원인데 엑스레이 기계가 없어 다른 곳에 갔던 터였다. 선생님은 관절 부위를 이리저리 만져보았으나 삐용이는 아파하지 않았다. 나이가 있으니 관절이 안 좋을 수도 있다며 관절 영양제를 주셨다. 두 달을 관절 영양제를 먹였다.
그러나 삐용이는 계속 발을 들고 다녔다. 어떤 날은 괜찮은가 싶다가도 어떤 날은 들고 다녔다. 그래도 산책도 잘하고 뛰어다니기도 해서 이제 나이가 들어서 관절이 아픈가보다 했다. 실제로 삐용이는 적어도 열 살, 혹은 그 이상 됐을 것이다. 구조를 할 당시 몇 살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쉼터에서 산 세월만 7~8년이다.
모든 아이들을 집중케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삐용이가 그러고 있는 동안에도 여러 아이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봉순이는 바비랑 싸워서 한쪽 귀 끝이 잘려 나갔고, 소보루는 탈장 수술을 해야 했다. 소길이도 장이 안 좋아 오랫동안 병원을 다녔고, 그즈음 전해질 검사를 했다. 뽀식이도 한쪽 뒷 발을 들고 다녀 병원에 가야 했고, 춘향이도 물림 사고를 당해 수술을 해야 했다. 춘향이의 경우는 날이 더워 상처 부위가 덧날까 봐 소장님이 임시 보호를 하며 쉼터 올 때마다 데리고 다니셨다. 쉼터는 항상 정신없이 돌아간다.
삐용이는 항상 밝은 얼굴로 견사를 누볐다. 먹기도 잘 먹었고, 절뚝거리긴 했지만, 산책도 잘했다. 그래서 조금은 관심을 덜 두었던 것도 사실이다.
“삐용이 앞다리 어깨 쪽이 불룩해요. 내가 왜 그걸 못 봤을까...”
소장님이 사진을 찍어 보내셨다. 정말 그랬다. 뭔지 몰라 다음 날 병원에 데려갔다. 엑스레이를 찍었고, 혈액 검사를 했다. 선생님은 임상 경험상 좋아 보이진 않는다며 조직 검사를 해볼 거냐 물으셨다.
조직검사라니? 그건 암이 의심될 때 하는 검사 아니던가. 갑작스러운 일이 터진 거다. 암까지는 생각도 못 했다. 우리가 어찌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으니 우선 스테로이드제를 먹여보자고 했다. 크기가 줄면 암이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더 깊은 검사를 하려면 다른 병원에 가보는 것도 좋다고 했다. 언젠가 한림쉼터에도 암 환자가 발생할 거라는 생각은 막연하게 하고 있었다. 확률상 그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다가올 줄은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L병원에 문의를 하기로 했다. 원장님은 엑스레이 사진을 보시더니 암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고 하셨다. 만약 암이라면 다리를 어깨부터 전부 절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모르니 다른 곳도 엑스레이를 찍어보자 하셨다. 아무것도 모르는 삐용이는 그저 헤헤거리고 있었다.
추가로 찍은 엑스레이 결과를 본 원장님은 심각하게 말씀하셨다. 폐 쪽에도 뭐가 보인다고. 만약 폐로 전이된 거라면 4기라고 봐야 한다고 했다. 좀 더 정확한 검사를 위해 CT를 제안하셨다. 하지만 제주도엔 CT 있는 동물병원이 두 곳뿐이었다. 원장님은 그 병원에 CT 의뢰를 했고, 삐용이는 마취하고 CT를 찍었고, 마취한 김에 조직검사, 항암제 감수성 검사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마취가 풀릴 때쯤 병문안을 갔는데 삐용이는 입원실에서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내가 ‘삐용아~’부르자 고개를 조금 들고 나를 쳐다봤다. 아는 목소리라고 반응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