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점조직
한림쉼터는 국제고등학교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다. 아주 가까운 건 아니지만 다른 유기견 보호소에 비해 가까워서 국제고등학교 학생들이 자주 온다. 현재 국제고등학교는 네 개다. NLCS, 브랭섬 홀 아시아, 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 제주, 한국국제학교가 그것이다.
이 네 곳에선 모두 봉사를 온다. 자주 오는 곳도 있고, 가끔 오는 곳도 있다. 방학 때는 학생들 봉사가 거의 없고, 개학을 하면 거의 매주 토, 일요일마다 봉사 일정이 잡힌다. 그날은 개학 후 첫 봉사가 있던 날이었다.
학생들이 오면 인원이 많기 때문에 줄 산책을 더 시켜줄 수 있다. 일반 반려견들의 경우 어느 정도 교육이 되어있고, 경험이 많아 줄 산책은 수월한 편이지만 여기는 좀 다르다. 일단 애들 덩치가 크다.
대체로 소형견을 키우는 분들이 많아 중대형견의 줄 산책을 부탁하면 일단 그 힘이 놀라신다. 나도 그랬다. 우리 집 강아지들은 가장 작은 애가 6kg대이고, 가장 큰 애가 11kg대다. 하지만 그 정도면 한림쉼터에선 소형견 취급을 받는다. ‘아이고~ 우리 쪼꼬미들~’ 이런 말이 절로 나오는 사이즈다.
게다가 줄 산책을 어쩌다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마음이 앞서 빨리 가려고 끄는 애들이 있다. 그 덩치들이 끄니 컨트롤을 잘못하면 목줄이 휙, 빠져버리고 그 틈을 타고 휭허니 달려가 버리는 경우도 있다. 특히나 산책을 비교적 잘하는 녀석들도 차가 지나가서 놀라거나, 꿩이 종종걸음으로 뛰어다니면(쉼터 근처엔 꿩이 제법 많다) 그걸 잡으려고 순간적으로 튀어 오르기도 해서 꽤 많은 주의가 요구된다.
스스로 돌아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혹시 모를 일이니 늘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목줄에 리드줄 하나 차고 별도의 줄을 하나 더 채우거나 하네스를 하고 나간다. 하나가 빠져도 하나는 남아있을 수 있게 말이다. 그래서 학생들에겐 줄 산책을 잘 부탁하진 않고, 봉사를 자주 와서 애들이 익숙해하는 분들, 혹은 중대형견 산책을 해본 적 있는 분들께 부탁드리고 있다.
그날은 학생들이 개학을 해서 선생님 포함 열두 명이 왔고, 일반 봉사자분들도 몇 분 계셨기에 일반 봉사자님 세 분께는 밥물똥 대신 줄 산책을 부탁드렸다. 체이스님과 지아님, 그리고 지아님의 친구인 유림님이었다. 세 분은 번갈아 가며 1인 1견씩 줄 산책을 시켰다.
체이스님은 젊은 남자분이셔서 주로 덩치가 커 힘이 좀 있는 애들을 부탁드렸고 지아님과 유림님께는 산책을 잘하는, 그러면서 둘이 친한 애들을 1인 1견 두 세트로 부탁드렸다.
두 개의 산책팀은 한림쉼터를 기준으로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뉘어 산책을 나선다. 혹시나 발생할 사고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줄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체이스님은 아롱이, 점프, 혜성이, 다솜이를 시켜주셨고, 지아님과 유림님은 마트, 호리, 양말이, 별이, 뽀이와 춘향이를 시켜주셨다.
이날은 미용 봉사도 있었던 날이었다. 뚜뚜쌤과 유나님, 그리고 미미님이 호동이와 누리 미용을 시켜주셨다. 두 마리 미용시키는데 왜 세 분이나 필요하냐고 물으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용이라는 게 또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미용을 많이 받아본 호동이는 괜찮지만, 누리의 경우는 아주 소심하고 까칠한 면도 있어서 누리가 잘 아는 분이 잘 붙잡아주셔야 안전하게 미용을 할 수 있다. 게다가 누리는 못 시켰지만 호동이는 미용 후 따뜻하게 물을 데워 목욕까지 시켜주셨으니 그 일이 만만치 않다.
봉사가 끝난 후 학생들은 먼저 떠났다. 남은 봉사자분들과 함께 시원한 음료를 나눠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나는 말했다.
“아니 이거 꼬리를 물고 계속 친구분들을 데려오시네요?”
“우리끼리도 이야기했어요, 이거 완전 다단계라구요.”
“모르셨어요? 한림쉼터는 다단계 점조직이에요. 하하하.”
“푸학. 점조직이요?”
“이러다 지역별 지부장 생기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러자 뚜뚜쌤이 이러신다.
“미미님이 **지역 지부장님 하시면 되겠어요.”
우스갯소리로 우리는 한림쉼터는 다단계 점조직이라고 표현한다. 한 분이 지인분을 데리고 오시고, 그 지인분은 또 지인분들을 데리고 오시고, 그 지인의 지인분은 또 지인분을 데리고 오시고...
다단계 점조직의 시작은 작년에 슬기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당시 슬기님은 토요일 고정봉사를 담당해 주고 계셨다. 그때 제주다온이라는 봉사팀이 토요일에 봉사를 오시곤 했다. 제주다온님엔 미미님이 계셨다. 슬기님과 미미님은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언제부턴가 두 분이 친하게 지내시는 게 목격되었다.
미미님은 애견 미용을 배우고 계셨다. 몇 달 전에는 미용학원 선생님인 뚜뚜쌤과 유나님을 데리고 오셨다. 다른 곳에 미용 봉사를 가시려던 것을 어렵게 붙잡아 모시고 왔노라며. 그때부터 미용이 가능한 아이들을 고정으로 담당해 주고 계신다. 유나님은 뚜뚜쌤을 도와 같이 미용해 주셨다.
미용만 하는 게 못내 아쉬웠던지 뚜뚜쌤과 유나님은 봉사를 따로 오시기 시작했다. 애들 간식도 사 오시고, 사료도 가져오셨다. 봉사를 하시며 다른 많은 아이들을 만나는 게 좋으셨던 것 같다. 그러더니 또 한 분의 지인을 데리고 오셨다. 지아님이시다. 뚜뚜샘, 유나님, 지아님은 학교 동창이라고 했다.
여름날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봉사하시고 늘 계곡이나 바다로 물놀이 일정을 잡으셨다. 봉사 후 물놀이는 얼마나 꿀맛이겠는가. 그분들은 정말 발랄 그 자체셨다. 그러더니 지아님이 친구분을 또 데리고 오셨던 거다. 유림님이다.
까르르대며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체이스님이 대화에 끼어드신다.
“친구분들을 계속 데리고 오시나 봐요?”
“네. 저분들은 진짜 애들에게 뭘 더 해줄 수 있을까 늘 고민해 주시는 분들이세요.”
“와~ 너무 좋으신 분들이시네요.”
체이스님은 어릴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가셨다고 했다. 거기서 같은 한국교포를 만나 결혼을 하시고 브리더를 통해 로쉐라는 예쁜 소형견 한 마리를 키우고 계시다고 했다. 캐나다엔 유기견이 거의 없다고 하시며 ‘캐나다 체크인’을 보시곤 한국에 가서 유기견 보호소 봉사를 꼭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하셨단다. ‘캐나다 체크인에 나오는 ‘감자’가 한림쉼터 출신이에요. 저쪽에 고구마도 있어요.’ 하니 너무 반가워하셨다.
“그런데 캐나다에선 왜 유기견이 거의 없을까요?”
“일단 번식장이 없어요. 브리더가 있는데 저희 강아지도 브리더를 통해 데려왔어요. 모든 절차를 다 받고 이제 아이만 데려오면 되는 순간이었는데, 그때 우리가 직장에 다니고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데려갈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집에 강아지 혼자 두는 시간이 너무 길다구요. 저희 부부도 그 사실 때문에 서서히 재택근무로 바꾸고 있었거든요. 그 이야기를 해서 결국은 가족으로 맞이할 수 있었어요.”
“와, 브리더도 거절할 수 있군요?”
한국은 일단 번식장이 있고, 펫숍에선 돈만 주면 누구나 구입할 수 있다. 강아지가 살아갈 환경은 신경 쓰지 않는다. 너무나 다른 세계였다.
“여기 애들은 정말 표정이 좋아보여요. 봉사자님들이 정말 잘 해주시나 봐요.”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장기 여행을 와서 본거지(?)를 서울에 두고 다시 제주 여행을 오셨다는 그분들. 다시 서울에 가셨다가 추워지기 전에 다시 오겠다고 하셨다. 그쯤 겨울 대비용으로 견사에 비닐을 치는 작업을 한다 하니 함께 하고 싶으신 모양이었다.
옆에선 미미님과 그 조직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애들 미용하는 데 필요한 미용기계를 같이 구입하자고 결의하셨나 보다. 회비처럼 조금씩 돈을 내어 구입하자는 것이었는데 미미님은 웃으며 ‘이건 강매야!’라고 하셨다.
돈은 참 신기하다.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내 삶의 비용을 조금씩 떼어 유기견을 위해 쓰는 것. 그것은 사랑이다. 돈만 그러하겠는가. 시간과 에너지도 그러하다. 자신들의 삶에 유기견의 삶이 들어있다는 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래서 나는 책의 제목도 ‘인생견생’이라 짓지 않았던가. 견생을 위한 인생, 그것은 곧 인생을 위한 견생이 된다.
‘다단계 점조직’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나의 상상도 이야기해 볼까 한다. 한림쉼터에 봉사를 오는 국제고등학교 학생들은 유기견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봉사도 오고, 유기견 보호소 아이들의 입양 홍보도 돕고, 플리마켓 같은 행사도 열어 후원도 한다.
유기견들을 위해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실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고 학생들은 대다수가 미국, 캐나다, 영국 등으로 대학을 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오늘이 봉사 마지막이라고 인사를 하면 나는 꼭 이렇게 말하곤 한다.
“원하는 학교에 꼭 진학하시길 바라고, 그곳에서도 우리 한림쉼터를 기억해 주세요.”
그곳에서도 바쁜 생활이 이어지겠지만 어느 한 켠에 한림쉼터의 기억을 간직해준다면, 꼭 한림쉼터가 아니어도 유기견을 위해, 동물복지를 위해 인생의 일부를 나눠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고등학생이지만 나중에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동물을 향한 사랑이 싹을 틔우고 나무로 자랄 수 있다면 훨씬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물론 체이스님도 캐나다로 돌아가셔서도 기억을 해주신다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누군가의 기억에 한 조각이라도 남아있으려면 가치를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그게 우리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현재 한림쉼터에 있는 아이들 돌보는 것도 사명감을 갖고 하고 있지만 ‘유기견’의 사정을 널리 퍼트리고 누군가의 기억에 남게 하여 ‘다단계 점조직’이 만들어지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유기견보호소에서의 봉사는 단순히 보호소의 강아지들만 돕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생명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과 같다. 한 마리 한 마리를 사랑하고 돌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고, 그것이 곧 우리의 삶의 방향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니 한림쉼터 다단계 점조직이 아니어도 동물복지의 다단계 점조직이 되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우리는 그 씨앗을 열심히 심고 있다. 학생들이, 또 일반 봉사자분들이 봉사하면서 어떤 생각들을 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 나비의 날갯짓이라고 생각한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어떤 일을 가져다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봉사자님들은 봉사하면서 찍은 사진과 영상을 자신의 인스타 스토리로 많이 올려주신다. 한림쉼터 태그를 걸면 나도 스토리에 추가한다. 그중에서 널리 알리고 싶은 건 따로 저장해서 유튜브, 스레드, X 등으로 전파한다.
그날도 여러 봉사자분들이 스토리를 올려주셨다. 나는 한림쉼터 계정에 스토리를 추가하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린다. 그러다 짧은 대화가 이어지기도 한다.
그중에서 지아님과의 대화를 소개한다. 지아님은 너무 행복하다 하셨다. 아이들을 만나고 자신이 무언가를 줄 수 있다는 게 즐거우신 모양이다. 나도 여러분이 계셔 행복하다 했다. 진짜다. 아이들을 위해 시간과 사랑을 나눠주시는 분들이 정말 고맙고 그런 분들이 다단계 점조직으로 늘어나는 게 너무 행복하다.
그러면서 보내주신 책 한 페이지엔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문장을 읽고 나니 기분이 훈훈해졌다. 오늘도 행복했다.
“저는 딱 3초 만에 행복해질 수 있어요. 멍멍이랑 눈이 마주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