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두려워 봉사를 못했지만 이젠 외부기생충 예방약까지 척척
어느 날, 한 여자분이 봉사를 오셨다. 봉사 오시는 분들이 많아 다 기억은 못 하는데 이분은 기억났다. 왜냐하면 같이 오셨던 남자분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계속 기다리셨기 때문이다. 보통 데려다주는 거라면 내려주고 바로 떠나신다. 봉사가 2~3시간은 걸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간을 계속 차에서 기다린다는 경우는 처음 봤다. 그래서 기억난다.
한동안 여자분 혼자 봉사를 오시다 어느 순간부터 차에 계셨던 남자분과 함께 오셨다. 나중에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는데 남자분이 개를 무서워해서 봉사를 못 했다고 한다.
아니 그럼, 남자분은 어떻게 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일까? 너무 궁금했다. 지금은 40kg 넘는 애들과도 잘 지내고 밥물똥뛰는 물론, 이제는 심장사상충 예방약도 잘 먹이고, 외부기생충 예방약도 잘 발라주기 때문이다. 외부기생충 예방약은 목덜미에 바르는 액체 형태의 약이라 강아지를 붙들고 발라야 하지 않던가. 근데 잘하신다.
그 과정이 너무 궁금해서 서면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 두 분은 현지훈, 이재연 커플이며 제주 토박이로 30대 초반이다.
우선 먼저 봉사를 오셨던 재연님은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서 한림쉼터에 봉사오는 게 어렵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훈님은 어릴 적 강아지에게 물린 기억이 있어 무서웠고 또 아예 관심도 없었다. 당연히 유기견에 대한 인식도 없었다. 하지만 재연님이 봉사를 가고 싶다고 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동행은 하겠지만 참여하진 않겠다’.
그랬던 거였다. 그날 내가 봤던 광경은 ‘동행’은 했지만 ‘참여’는 하지 않은, 바로 그 모습이었다. 하지만 재연님은 강아지들과 만나고 봉사를 했던 것이 즐거웠었는지 하루 종일 한림쉼터 이야기를 했고 ‘다음엔 꼭 같이하면 좋겠다’로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지훈님은 좋아하는 사람이 같이 해보자고 했기에 용기를 냈다.
봉사 후 어떤 생각을 했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을 해주셨다. 그대로 옮겨본다.
(재연님) 봉사를 하게 되어 유기견에 대한 마음과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요즘 저의 최대 관심사는 ‘유기견’입니다. 어디선가 본 글입니다. ‘봉사를 하고 왔는데 봉사를 받고 온 느낌이다.’ 그 말에 동감합니다.
저는 강아지는 좋아하지만, 강아지들에 대한 지식은 없었습니다. 유기견 봉사를 통해 강아지들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지훈님) 대형견 친구들을 봤을 때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밥물똥뛰를 하면서 강아지들이 저를 좋아한다는 게 느껴져서 경계심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경계심이 많은 친구들을 보면서는 내가 먼저 두려움을 극복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경계심과 무서움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져 갔어요. 첫 봉사 때는 좋은 경험이니까 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현재는 매주 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런 저를 보면서 한림쉼터 친구들과 제가 서로 선한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강아지를 가족으로 맞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더욱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저 예쁘다고 데려다 키우는 것이 아닌 ‘가족’이니까 그 아이의 마지막까지 책임감 있게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맞다. 함께 살다 보면 희로애락이 다 존재한다. 어떨 땐 화가 나고 어떨 땐 기쁘고 행복하다. 또 어느 순간엔 슬프다. 감정만의 문제가 다가 아니다. 강아지와 가족이 되는 순간 제약되는 것들도 생긴다.
식당 등에 들어가지 못하는 건 너무 흔하고 여행조차 마음껏 가지 못하는 순간도 많다. 그리고 사람 사는 사회에서 강아지와 함께하려면 여러 가지로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아직까진 우리 사회는 그런 사회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아이를 내 가족으로, 내가 품어야겠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뭉클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봉사를 할 때면 혼잣말로 너는 ‘그래도 가족들이랑 같은 방에 있네’, 하기도 하고 ‘그래도 여기는 안전해’, 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기회는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너무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예전 한림쉼터는 안전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림 사고가 잦았고 그렇게 별이 된 아이들도 많아 어떤 봉사자분은 ‘지옥’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우리가 리더를 맡은 후에 한 달까지는 물려 죽은 아이도 있고, 사고가 나서 다리를 절단해야 했던 아이도 있다(다행히 가족을 만났다).
그런데 그 후에 오신 봉사자님들 눈에는 한림쉼터가 ‘안전한 공간’으로 보였다는 거다.
물론 애들끼리 소소하게 싸움은 있다. 하지만 우리 인간도 한 공간에서 살다 보면 이런저런 싸움은 있다. 심지어 한 가족끼리도 싸우지 않는가. 물론 그조차도 있으면 안 되지만 말이다.
재연님의 경우 쉼터 봉사 뿐만 아니라 제제프렌즈 사무실까지 오셔서 아이들 프로필 작업을 해주셨다. 프로필은 인쇄하면 코팅을 위해 종이를 자르고 또 코팅을 한다. 이 작업이 단순해보이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린다. 우리가 못하고 있을 때 재연님은 흔쾌히 해주셨다. 이 또한 귀중한 봉사인 것을.
봉사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재연, 지훈님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로 마무리해 본다. 지훈님도 해내셨다! ^^ 지훈님이 하셨으니 그 누구도 하실 수 있다. 용기만 내시면 된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번째로, 시간이 없어서 봉사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계시는데 시간을 투자할 만큼 가치가 있는 행동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 번째로, 크게 힘들고 어려운 일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 게 당연하듯이 말 못 하는 동물을 위해 우리가 시간을 내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세 번째로, 어떤 일이든 하지 않으면 모르는 일, 지훈님 같은 경우에는 개를 두려움의 대상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봉사를 통해 그 두려움을 무너트렸습니다. 용기 내서 도전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림쉼터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