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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방식

홍난영
홍난영
- 10분 걸림 -

제주일고 학생들이 봉사를 왔다. 남학교라 다섯 명의 남학생과 성인 보호자 한 분이 오셨다. 우리 한림쉼터는 고등학생 이상만 봉사가 가능하며 미성년자의 경우 성인 보호자가 함께 봉사에 참여해야 한다. 안전을 위해서다.

신체는 성인과 거의 같지만 아무래도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어떤 경우 대처가 미흡할 수 있다. 대부분 평화롭게 진행되지만, 간혹 어떤 강아지가 산책하는 가운데 실수로 다른 견사의 강아지가 나올 수 있고, 둘이 사이가 좋지 않는다면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일고 학생들은 예전에도 한 번 봉사 온 적이 있었다. 그때도 B견사를 담당했었다고 한다. B견사는 일종의 한림쉼터의 신도시로, 조금 더 체계적으로 견사들이 지어졌기에 초보 봉사자분들이 하기에 적합하다.

참고로 한림쉼터는 총 세 곳으로 구분이 되어있다. 한림쉼터가 생겼을 때 만들어진 A견사. 이른바 원도시다. 세월이 오래됐기도 했고, 새로운 유기견들이 입소할 때마다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견사를 지었기에 들쭉날쭉이 많다. B견사는 추가로 더 늘어난 공간이다. 그래서 신도시스럽다. 마지막은 병동견사 쪽이다. 컨테이너에 병동견사가 있고 그 주변으로 견사가 몇 개 있다.

각 구역마다 애들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봉사하면서 견사 문을 하나씩 열어주면 나와서 놀다가 들어간다. 그런 공간이 세 곳이니 총 세 군데서 애들이 뛰어다니게 된다. 그렇기에 항상 견사 문을 꼭 닫아야 한다. 서로 만나지 못하게 말이다.

이번에도 학생들은 나의 안내로 B견사를 담당하게 되었다. 지난번에도 안내 사항을 들었겠지만, 귀가 따갑도록 들어도 괜찮기에 한 번 더 반복했다.

자, 이곳은 견사들이 마주 보고 있죠. 두 명씩 짝을 이뤄 각각의 라인의 밥과 물을 담당할게요. 똥 담당은 한 명이면 됩니다. 견사 안에서 똥을 안 싸는 애들도 있거든요. 양쪽 왔다 갔다 하면서 치우면 됩니다.

산책은 제가 시킬 건데 왼쪽 라인 애들부터 시킬 거예요. 따라서 오른쪽 라인 애들은 밖으로 나오면 안 돼요. 견사에 들어가고, 나올 때 애들 못 나오도록 해야 하고, 항상 견사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해야 해요. 혹시라도 다리 사이로 비집고 나오거나 할 때는 빨리 저에게 알려주세요.

밥 담당은 그릇을 수거해서 수세미로 한 번 닦은 후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해야 해요. 그리고 20kg 이상 되는 애, (양말이를 가리키며) 저런 애들은 이 비어커로 하나 가득 주면 돼요. 그보다 적은 애는 거의 없지만 한 컵 모자르게 주면 되고, 더 큰 애들은 조금 더 주면 됩니다. 물 담당은 역시 그릇을 수세미로 한 번 닦고 물을 반 이상 채워주면 됩니다.”

안내를 듣자, 학생들은 가위바위보를 했다. 똥 담당을 정하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한 명이 선정됐고, 으아아~ 하는 장난기가 어린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똥 담당이 제일 쉬운 것을~ 똥이 더럽게 느껴져서 그렇지 발견하면 쓸어 담으면 되니 아무 생각 없이 할 수도 있다. 애들이 많은 견사엔 똥도 많은데 그럴 땐 게임을 하는 느낌이다. 숨은 똥 찾기도 꽤 재미있다.

자기들끼리 밥물똥 담당을 정하고 왼쪽 라인과 오른쪽 라인도 정했다. 그리고 봉사 시작~ 처음엔 누구나 삐걱댄다. 이게 밥그릇인지, 저게 물그릇인지 헷갈리고 한꺼번에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이 그릇이 이 견사 것인지 저 견사 것인지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정리가 되었다.

두 라인으로 나뉘어 밥물팀이 두 팀이었는데 어느 순간 한 명이 아예 설거지 담당을 하기로 했나 보다. 그릇을 수거해 설거지 담당에게 갖다주면 수세미로 정성껏 닦았다. 정말 그릇 앞뒤로 열심히 닦더라. 그 학생은 집에서 설거지를 해봤던 것일까? 나도 그 나이 땐 설거지 거의 안 했다. 그렇게 나름의 체계가 잡히자, 속도가 빨라졌다. 결국 1시간도 안 돼서 밥물똥을 다 해낼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뭐했냐고? 애들 산책시키면서 다른 견사 애들 나오는지 아닌지 관찰하고, 학생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았다. 물론 필요하면 거들기도 하고. 너무한 거 아니냐고? 왜 같이하지 않고 지켜만 봤냐고?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너무 질책하지 마시라.

이유를 대자면 이렇다.

내가 안내해도 결국은 자기들 나름의 체계를 만들어낸다. 이건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그렇다. 당연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안내하는 건 기본이고 어쩌면 내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기본을 숙지하고 그게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끼리의 합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 합은 팀 구성원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이를테면 밥물똥 각각의 담당은 있지만 한 사람은 그릇 수거, 설거지를 하면 한 사람은 밥그릇 물기를 닦고 밥을 퍼서 담고, 설거지를 한 사람이 물그릇에 물을 담는다(수도 근처에 있으므로). 그 사이 똥을 다 치운 사람은 채워진 밥그릇과 물그릇을 옮긴다. 보통 수도가 견사 밖에 있다. 이 역할들이 조금씩 변하면서 하나의 팀이 만들어진다. 이 팀이 여러 번 봉사를 오게 되면 점점 더 효율적으로 업그레이드된다.

내가 개입해서 이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간섭하면 효율적인 팀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만 안내자인 나는 그런 팀들이 제각각 움직이고 있을 때 전체적으로 안전한지 매의 눈으로 살펴보며 조정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사실 나는 이런 훈련을 받아보지 못했다.

나 어릴 적 학교엔 요즘처럼 자발적으로 운영되는 동아리, 아니 동아리 자체가 없었고 집에서도 엄마는 여유가 없어 자신의 방식대로 빨리빨리 하기를 바랐다. 처음이고 어려서 손이 느렸을 나를 기다려주지 않으셨다. 결국 나는 수동적인 인간이 되었고, 매사에 엄마에게 ‘혼날까 봐’ 눈치 보는 삶을 살았다. 반대로 그랬기 때문에 반항심도 더 커졌다. 눈치를 보다가도 슬금슬금 반항했고, 그러다 때로는 크게 터트리기도 했다.

이 ‘혼날까 봐’ 유령은 성인이 되고, 엄마가 돌아가신 후 십여 년이 흐를 때까지도 끈덕지게 붙어있었다. 하지만 한림쉼터를 맡게 되고, 팀을 이뤄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가게 되면서 ‘혼날까 봐’ 유령은 사라졌다.

좌충우돌하더라도, 고군분투하더라도,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가는 시행착오의 시간은 주어져야 한다. 물론 엄마는 나를 기다려줄 시간도 없었겠지만, 내가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힘들어하는 걸 원하지 않으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당탕탕 터널을 건너지 않으면 제대로 설 수 없다.

뛰뛰를 시키고 있는데 웬 타령 소리가 들렸다. 학생들이었다. 타령일 리가 없어 트로트인가 싶었는데 아무리 다시 들어도 그건 타령이었다. 아니, 레트로가 유행이라더니 트로트를 넘어 타령까지 간 거야? 그때 성인 보호자님이 그러신다. 춘향가에요. 시험 본다고 저러고 있네요.

아하, 춘향가를 시험보는구나. 우리는 타령은 배우지도 않았던 것 같고 온통 서양 음악 중심이었던 것 같은데 많이 변했다 싶었다.

학생들은 용돈을 모아 사 온 간식을 쫙 돌렸다. 얼마나 뿌듯했을까. 유기견을 위해 봉사를 와서 제 나름의 ‘밥물똥 전략’을 세워보기도 하고, 용돈을 아껴 내가 아닌 다른 생명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으니 두 시간 봉사 시간이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젊은 시절, 그런 것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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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영

(사)제제프렌즈 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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