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용이 이야기(5) 결국, 삐용이
진통 패치를 제거하고 며칠이 지났지만, 삐용이는 일어나지 못했다. 병원에서도 혹시 몰라 패치를 제거했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게 그 탓은 아닌 것 같다 했다. 몸 상태가 안 좋아 무너져 내렸던 것 같다.
우리가 먹고, 자고, 쉬는 동안에도 그 독한 암세포들은 부지런하게도 움직였던 모양이다. 왜 그렇게 가혹한 거니? 우리 가여운 삐용이에게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삐용이는 어느 순간부터는 걷지 못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더니, 또 어느 순간부터는 배변도 자유롭게 하지 못해 배를 꾹 눌러주어야 쉬야를 하곤 했다. 움직이지 못하니 물도 마실 수 없어 소장님이 데리고 다녔다. 쉼터에 오면 챙겨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숨 쉬는 것도 힘들어졌다. 미친 암세포는 하나씩 하나씩 빼앗아 갔다. 삐용이는 누워서 눈알만 굴리며 필요한 게 있을 때 겨우 얼굴을 들었다. 그때마다 소장님은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다시, 병원을 찾아 엑스레이를 찍었다. 암세포가 폐에 많이 퍼져있었다. 득실거리는 암들을 보니 치가 떨렸다. 사람에게나 개에게나 이놈들은 참 독하게 구는구나.
암세포가 증식하면 어느 순간부터 물을 만들어내고 폐에 물이 차면 익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원장님은 앞으로 더 힘들어질 거라며 안락사를 권유했다. 안락사라는 게 그나마 덜 고통스러울 때 보내주는 거 아니겠냐고. 갖은 고통 다 겪은 후 보내는 건 의미가 없지 않냐고.
삐용이가 걷지 못하게 된 지 10여 일 만이었다. CT를 찍은지 한 달 조금 넘은 시점이었는데... 평균 두 달이라더니 그나마도 못 채웠다. 소장님은 계속 붙들고 싶어 하셨다. 삐용이가 너무 안타까워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니니 우리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저녁 6시로 시간을 잡았다.
고정 봉사자님과의 단톡방에 이 사실을 올렸고, 오후 4시 30분까지 쉼터에 있을 예정이니 삐용이와의 마지막 인사를 하실 분들은 방문해도 좋다고 했다. 평일이라 직장 때문에 움직일 수 없던 분들도 많아 다들 안타까워하셨다. 몇몇 봉사자님들은 쉼터에 오셔 삐용이에게 인사를 나눴다. 삐용이는 마지막으로 한림쉼터 아이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병원에 왔다.
숨소리는 더 거칠어졌다. 정말 숨넘어가겠다는 말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더 이상 함께 하는 게 무슨 소용이랴. 우리는 삐용이게 잘 가라고, 이제 아프지 말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리고 삐용이는 강아지별로 떠났다. 2024년 9월 26일이었다.
팔기 위해 키워졌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대부분의 견생을 살다 간 삐용이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