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식 캔은 사랑을 싣고
쉼터에서는 습식 캔이 정말 많이 사용된다. 일단 약 먹이는 애들에게 쓰인다. 병원에선 주로 알약을 처방해 주시는데 두어 알인 경우도 있지만 예닐곱 알이나 되는 애들도 있다(가지가 그렇다).
사료를 밥그릇에 부어주자마자 미친 듯이 먹는 애들은 약을 함께 넣어줘도 그게 사료인지, 알약인지 나는 몰라, 일단 먹자, 와구와구~ 해서 캔이 필요 없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약 그대로 주면 절대로 먹지 않는다.
어떤 애는 캔의 맛을 따진다. 자기 취향이 아니면 입에도 대지 않는다. 캔의 맛이 자기 취향이 아닌 경우 다른 캔으로 시도하면 먹는 경우도 있다. 그럼 그 녀석은 꼭 그 캔으로 약을 먹여야 한다. 환장한다.
어떤 애는 귀신같이 알약만 딱 골라 퉤, 뱉어버린다. 이런 경우는 맛과 취향과 상관없이 안 먹겠다고 버티는 것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강급을 하기도 한다. 알약을 손가락 끝으로 잡아서 입을 벌려 깊숙이, 목구멍 직전까지 넣어 떨군다. 재빨리 입을 닫은 채 코에 후~ 입김을 한 번 불어넣으면 자기도 모르게 꿀꺽, 삼키게 된다.
우리 집 강아지들은 젤 큰 놈이 11kg인데 쉼터에선 그 정도면 소형견 취급을 받는다. 우리 강아지 중 제제도 알약만 골라 퉤 뱉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몇 번 강급한 적이 있는데 쉼터 애들은 기본이 15~20kg인지라 강급하는데 제제와는 달랐다. 손가락이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참 넓고 깊었다. 더 큰 애들은 더 넓고 깊겠지. 넣다 보면 가끔은 무서워질 때도 있다.
성질난다고 입 다물지 마라~ 그 입 다물지 마라~~
물론 강급은 친한 애들에게만 가능하다. 혹시라도 심기가 불편하면 입질하는 애들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깊숙하게 손이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콱 다물어버리기라도 하면 난감하다.
쉼터에선 약 먹일 때 숟가락을 사용한다. 습식 캔에 알약을 촘촘히 박아 한 숟갈 듬뿍 떠서 견사 안으로 숟가락을 들이민다. 그러면 쏙 빨아먹는다.
개들의 구강 구조는 사람과 같지 않아 숟가락을 쪽 빨아먹는 게 불가능해 보이지만 가능하더라. 입안에 숟가락을 일단 넣고 혀를 사용해서 휘감아 가져갈 수도 있다. 뭐 자기들 나름의 방법이 있겠지. 나도 처음엔 숟가락으로 떠먹이는 소장님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그게 가능해요? 그럼요~
숟가락을 사용하면 편리하다. 안 그러면 손으로 떠서 먹여야 하는데 일단 봉사 중 약을 먹이기 때문에 손이 더러울 수도 있다. 그런 손으로 떠먹일 순 없다. 차라리 숟가락이 낫다. 물론 숟가락을 들이밀면 입에 넣지 않고 혀로 할짝할짝하는 애들도 있다. 그러다 떨구기도 하는데 여러 번 그렇게 주니까 자기들도 알아서 방법을 찾아내는 것 같다. 갈수록 잘 받아먹었다.
어쨌든 말하고 싶은 건 약 먹일 땐 습식 캔이 필요하다는 거다. 한 아이가 약을 먹더라도 캔 하나를 따야 한다. 약 먹이고 남으면 주변 애들에게도 한 입씩 준다.
습식 캔이 쓰이는 두 번째 용도는 다이어트다. 이 경우가 훨씬 많이 사용된다.
현재 다이어트하는 애는 단이와 돼지다. 단이는 몸매가 둥그랬던(과거형임!) 노견이다. 허리가 안 보이는 경우를 ‘라떼는~’ 배둘래햄이라 그랬다. 배 둘레에 햄이 그득하다고. 하하.
단이는 대형견이고 나이가 10살이 넘었으니 완전 할머니급이다. 그런 단이가 어느 날 다리를 절었다. 병원에 가니 관절주사를 놓을 수도 있지만 일단 살을 빼보자고 했다. 다리를 들고 걷는 정도는 아니어서 그때부터 단독 견사로 옮기고 단이 전용 사료함을 만들었다.
이사님은 다이어트에 좋은 사료를 구입, 저울로 하나하나 무게를 재서 지퍼백에 사료를 담아 날짜를 기입했다. 봉사자분들이 많다 보니 먹였는데 모르고 또 먹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사료량을 줄이면 배가 고파, 안고파? 고플 것이다. 물론 갑자기 확 줄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남의 밥도 뺏어 먹고 그랬을 텐데 단독 견사라 그걸 못하니 배고픔을 더 느낄 수 있을 거다. 그때 포만감을 느끼라고 같이 주는 게 바로 습식 캔이다. 단이의 경우는 다이어트한지 벌써 6개월이나 되었기에 살이 많이 빠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더 이상 다리도 절지 않는다. 부라보~
자, 다음 타켓은 돼지였다. 소장님 말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우량아였다고 한다. 어찌나 우량아인지 이름부터가 돼지다. 아직도 우량하니 이를테면 성골이다. 날씬하게 태어났다 찌는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경우를 성골이라 부르더라.
돼지는 아직 다리를 절거나 들고 걷진 않았으나 아프기 전에 미리 살을 빼기로 했다. 솔직히 돼지를 안아 올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안아 올리지 못하면 차에 태울 수도 없다. 자기 스스로는 못 올라갈 테니. 슬픈 일이다. 그래서 시작했다, 다이어트.
우리는 잘 모르겠던데 오랜만에 오신 분들 눈엔 변화가 보인다고 했다. 살이 많이 빠졌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더 빼야 한다. 아직 걷는 것도 힘들어하니까. 돼지가 뛰는 그날까지!
다음은 뽀식이다. 앞서 말했듯 뽀식이는 무릎 관절염이라 살을 빼야 한다. 그래야 무리가 가지 않을 것이다. 그다음은 골드다. 골드도 살이 상당하다. 젊었을 때 사진 보니까 날씬하던데 시간이 흐를수록 애가 거대해져 갔다. 골드도 아직까진 관절이 아파 보이진 않는데 그래도 미리미리 빼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이어트하는 애들은 매일 습식 캔 하나씩을 먹는다. 약 먹이는 용으로 1~2개, 다이어트용으로 하루 4개, 즉 6개 * 30일 = 180개의 습식 캔이 필요하다. 처음엔 약 먹이는 용으로만 써서 그 양이 많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점점 더 많이 필요해지게 되었다.
우리는 참 도움 요청을 못 한다. 112마리 유기견을 보호하고 있어 운영비가 상당하지만, 기껏 부탁드리는 게 ‘매월 1일은 후원의 날’이라고 알려드리는 것뿐이다. 가끔 모금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오래도록 그래왔다. 아, 후원회원 모집 글은 올렸었다.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자발적으로 후원을 해주셔서 유지가 되고 있다.
그러다 얼마 전 습식 캔 후원 부탁 글을 올렸다. 필요해도 너무 많이 필요해서 말이다. 180개를 12개월로 곱하면 2,160개다. 쉼터는 노견이 많아 아픈 애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더 필요하면 필요했지 덜 필요하진 않을 거다.
조심스럽게 후원 부탁 글을 올렸는데 바로 DM을 보내주시기 시작했다. 60개, 80개, 96개~ 심지어 봉사자분들 수고하신다고 음료수도 2박스 보내주시기도 했고, 한 번 더 보내겠다는 분도 계셨다. 후원하고, 또 같이 후원하자고 공유하고, 더 주고 싶어 하고, 또 함께 안타까워해 주시는 분들. 그분들의 존재가 있기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결코 적지 않은데 적어서 죄송하다는 분들도 계신다. 작은 후원은 없다. 오히려 줄 수 있는 게 너무 적다고 외면해 버리는 게 더 슬프다. 부디 외면하지 말아 주시길. 흑흑.
한림쉼터는 100% 후원과 봉사로 운영된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또 그렇기에 늘 고맙고 또 죄송스러운 마음이 공존한다. 하지만 부탁드렸을 때 기꺼이 동참해 주시는 분들. 이런 게 사랑 아니겠는가.
세상엔 좋은 분들이 많다. 가끔 뉴스 등을 보면 세상에 어떻게 저런 악마 같은 새끼들이 있지? 싶기도 하지만 좋은 분들이 훨씬 더 많다고 생각한다. 따뜻한 마음이 모이고 모여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것 아니겠는가.